[연재소설 19로탄] 25회/ 4장 18세기에서 온 편지 (4)
[연재소설 19로탄] 25회/ 4장 18세기에서 온 편지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5.11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기원 60년사에서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연구생 제도도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많은 부작용과 폐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엘리트식 교육과 몰입교육이 불러오는 필연적인 업보였다. 소수 정예의 선발과 철저한 교육과 경쟁을 통한 1등 선발은 승부세계의 다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1등만을 기억하는 경쟁사회의 명암의 그늘이 유독 바둑계에는 심했던 탓이었다.

불과 1년에 수명이 입단하는 시스템하에서 마직막까지 경쟁하던 수백 명을 폐인화 시키는 현실(?)을 목도한 바둑계는 반성의 차원에서 연구생제도의 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김선생?"

"오, 왔어? 이리 앉아."

지옥심이 한국기원으로 찾아왔다. 언젠가 도인이 바둑대회에 참가한 날 지옥심도 온 적이 있기에 낮선 곳이 아니었다.

"도인이 오늘 시합 있어?"

"지금 한참 대국 중이야. 자 커피."

"오케이."

김산은 지옥심에게 1회용 커피를 타주며 반쯤 열려 있는 대국실 안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한 아이가 화장실을 가려는 듯 나왔다. 시간은 2시30분이었다. 오전 1시에 시작된 대국이니 바둑은 이제 중반전에 접어 들었을 것이다.  

"윤선생에게서 소포가 왔다면서?"

"소포는 아니고 자료 하나가 왔어. 이거야."

지옥심은 복사본 옛날 간찰(편지) 한장을 내놓았다. 한자 백 자 정도의 '초서' 간찰이었다.

"이거 정조 글씨 아냐?"

"그렇지? 나도 눈에 익더라고."

'맞아 정조간찰이 틀림없어."

김산은 정조의 필체를 잘 알고 있어 지옥심이 준 간찰이 정조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김산은 학위를 정조연구로 마쳤고 얼마전 발굴된 정조간찰 3백 점을 숙독하며 논문을 쓰고 있는  정조연구가였다.

"무슨 뜻이야?"

"바둑판 이야기 같은데. 집에 가서 파악을  해볼께"

"그렇게 해. 그런데 형사들은 연락 없어?"

지옥심이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물었다. 윤필수 사건은 오리무중이었다. 경찰은 전혀 수사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없어. 오, 이 편지는 정조가 김려에게 보낸 것이네."

김산은 간찰을 찬찬히 뜯어 보다가 말했다. 수신자가 '수진방  김려'라 초서로 날려 쓰여져 있었다.
역사학과 교수들 중에서 초서에 능한 사람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김산도 처음 마주친 초서 앞에서는 초급 학생(?)에 불과했다. 난해한 초서의 특성에 필사자의 필체습관이 결합된 옛문서는 그야말로 암호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수신자가 김려 맞아?"

"맞아."

"정말?"

"그렇다니까? 그러고보니 이 간찰 처음 공개되는 것이겠네? 그렇지?"

김산은 지옥심을 바라보며 물었다. 김려는 지옥심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조간찰의  등장은 지옥심에게는 좋은 연구자료라 할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