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19로탄]46회/ 7장 협객이 사는 법 (4)
[연재소설 19로탄]46회/ 7장 협객이 사는 법 (4)
  • 이 은호 작
  • 승인 2021.06.13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세기는 혼돈의 시대였다.

서세동점의 물결이 중국 일본에 상륙하여 이제까지의 동양적 세계관에 근본적인 질문을 묻는 상황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에도 일군의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서세동점의 실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있었고 역사는 그들을 북학파 또는 실학자라 이름 지었다.

정조는 이 서세동점을 온몸으로 막아선다. 박지원 박제가 서유구 등 발군의 학자들의 열망했던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생각하자는 열린 자각을 불온사상으로 간주하여 억누르고, 국가의 민리 민복은 오직 요순시대의 정신회복에 있다면서 시대의 방향타를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려 놓는 우를 범한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실학자들마저도 양분되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18세기의 아쉬움이다. 누구보다 학구적이고 인간적 도량까지 구비했던 정조에게 실학자들만이라도 한목소리를 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조의 신하이며 빛나는 학자였던 정약용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자. 정조가 문체반정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보고 정약용에게 의견을 묻는다.

- 어지럽고 조각난 문장은 사람의 기운을 갉아먹고 아이들이 이를 본받으면 역사와 경전 공부에 담을 쌓고, 재상이 이를 보면 종묘와 사람의 일을 외면하게 되고, 아녀자들이 이를 보면 베를 짜고 끈을 꼬는 가사일을 소홀할 것이니 천지간의 재앙입니다.

정약용은 말한다. 인간이 자유롭게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읽는 것은 천지간의 재앙(天地間災害孰甚於此)이라고 말이다. 정약용이 실학의 선두주자이면서도 일군의 실학자들과 대립되고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노예제에 대해 '하늘이 뜻이니 이는 거스를 수 없다'는 단호한 생각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18세기는 자유로운 사고의 출현과 그런 부위기를 공안과 세도(世道) 즉 세상의 기풍과 강상의 윤리를 침범하는 위험한 생각으로 본 두 개의 시각이 충돌하던 시대다. 전자가 박지원 박제가 이옥 등 일군의 학자들이라면 후자는 정조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이라 하겠다.

이런 사회기풍 아래서 조선 팔도에는 무뢰배들이 창궐한다. 정조시대의 기록으로 보이는 무뢰배들의 규모와 출몰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뢰배들은 3-40명씩 단위로 뭉친 강도단이자 테러집단으로 조정과도 대립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조직이 '백련방'이다.

백련방(白嶺防)은 함경도 영변을 무대로 혹세무민하던 교단이었다. 두두(頭頭)라는 선객(仙客)을 우두머리로 하여 점서(占書)와 지술서(地術書) 등으로 정신적 무장을 하고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가 온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아 재물을 취하고 살인을 일삼다가 정조 7년에 토포령이 내려져 10년간을 끌다가 정조 말에 일망타진된 일이 있었다. 이들의 구성원은 백명이 넘었다.

양천봉은 백련방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 중의 한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