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瓦草里)
[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瓦草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08.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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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초리는 금강 변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에 문촌리가 있고 북쪽으로 기복리, 동쪽으로 완포리와 인접해 있다. 마을 뒷산에 기우단이 있는데, 기우단은 예로부터 용왕과 산신을 위하는 풍습에 따라 명산과 대천을 찾아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이는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적인 행사로 계속되어 한발이 심할 때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어 민심을 수습했다 한다. 

와초리는 고려시대 임천에 속한 한산현 소속이었으며, 조선시대 1413년 한산군에 속했고, 조선말 한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 기와를 굽던 곳이 있다 하여 지새울, 또는 와초동, 지호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문촌리 일부를 합하여 와초리라 해서 서천군 화양면에 편입되었다.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와초동이라 하며, 와초동 둘레에 있는 이 세 봉우리를 삼봉산이라 부른다.   

지새울 남쪽으로 나루터가 있었다 하는데, 이곳에서 인근 전북지역을 왕래 할 수 있는 나루터로, 이를 지새울 나루터라고 불렀다. 

와초리에는 김영배 선생이 세운 한영학교가 있었는데, 현재 한영학교 자리에는 기와집이 들어서 있다. 한영학교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이며, 당시 독립운동가 김인전 선생이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다. 

이 학교는 일제의 많은 시달림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불어넣어 마산 새장터 삼일독립만세의 주역인 송기면, 임학규, 이근호, 김인두 선생 등을 길러냈다. 김인전 선생은 와초리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몸 받쳐 온 분이며,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으로 임시 정부의 의정활동을 이끌었다. 

일생을 독립과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던 그는 1923년 상해에서 순국하여 상해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었는데, 1980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한데 이어 지난 1993년 8월 10일 조국의 국립묘지에 옮겨져 안장되었다. 서천군에서도 2004년 하구둑에 기념비를 세우고, 김인전 공원을 조성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와초리는 와초동 와요지가 있었는데, 와요지는 기와를 생산하는 곳으로 전국에 여러 곳이 분포 되어 있었으며, 특히 백제시대 이전으로 추정되는 이 와요지는 그 시대부터 가옥에 기와를 올렸다는 증거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와요지가 있었던 장소는 대개의 경우 권력층의 가옥이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당시 교통이 불편하여 먼 거리를 운반하는 것보다 그 지방에서 소모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서천군에는 5곳의 와요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데, 화양면에는 와초리와 남성리 두 곳의 와요지가 있어 주변에 권력층이나 부자가 많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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