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공주시 웅진동(금성동)
[지명유래] 공주시 웅진동(금성동)
  • 석용현 기자
  • 승인 2021.08.1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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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방,정지방,증지방[마을] 송산리 북쪽에 위치한 마을. 정자방 : 옛날 도청소재지(현 공주사대부속고)를 기준으로 정북 방향에 위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조방, 증조뱅이 - 정씨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 한다. 정자가 많이 있었다. 정지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증지방이라 부른다. 성안 서쪽들 건너에 있는 마을인데 산아래 방처럼 놓인 마을이라 하여 정지방, 정자방이라 부르는 마을 이다.

진남루(鎭南樓) 쌍수산성 남쪽에 있는 문루. 유래 : 선조 35년(1602)에 관찰사 유근(柳根)이 공산성을 수축하고, 이어 남문루에 이층을 창건하여 진남루라 하였는데, 고종 광무 7년(1903)에 관찰사 홍승헌(洪承憲)이 중수하였으나 1947년에 무너져서 1963년에 중건했다.

창고터,창터[터] 금성동 55번지.성안에 있는 공주 중영(中營)의 별창(別倉)과 전창고(錢倉庫)의 터인데 숙종 36년(1710)에 관찰사 홍중하(洪重夏)가 별비미(別備米)를 두어 군기(軍器) 수리를쓰게 하는 한편, 별비전(別備錢)을 두어 성속(城屬)의 경비를 쓰게 하였는데, 그후 3년 되는 숙종 39년(1713)에 관찰사 송정명(宋正明)이 쌍수별창을 설치하고,별비 미를 취리(取利)하여 성속의 경비를 보충하고, 영조 18년(1742) 관찰사 김상익(金尙翼)이 별비미의 이자를 받아 군청(軍廳)고 장교청(將校廳)의 경비를쓰게 하다가, 고종 광무 11년(1907) 8월 1일 군대 해산으로 인하여 폐지되었다.그 당시 창고가 있었다해서 창고터라 부른다.
산성갈마기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을 倉터, 倉庫터라 부른다. 공주감영의 軍糧倉庫인 北庫의 조세를 받는 貢稅倉과 환지 쌀을 저장하는 社倉이 있었다.
  
학고개,화약고 고개[고개] 쌍수정 아래쪽에 있는 높은 고개. 전에 화약고가 있었다고 한다.

하장터,사정터[터] 당방재 위쪽에 있는 터. 옛날에 장수들이나 선비들이 이곳에 와서 화살을 날리곤 하였었다. 사정이 있었다하여 사정터라 불렀는데 변해서 하장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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