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죽산리(竹山里)
[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죽산리(竹山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09.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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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리는 고려시대 임천의 한산현에 속했던 마을이다. 1413년(조선 태종 13) 행정구역 개편 당시 한산군에 속했었고, 조선 말 한산군 동하면의 지역으로 대매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해서 대매, 또는 죽산이라 했는데, 1914년 죽산리로 하여 서천군 화양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마을 뒤에는 높이 120m 되는 대매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조릿대가 많이 있었다 해서 그 아래에 있는 마을도 산 이름 따라 대매라고 부른다.

죽진(竹津) 이라고도 하는데, 죽진은 백제시대 금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중요한 포구였다 한다. 이 포구는 신라시대와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큰 역할을 하던 포구이며, 고려 말 왜인들이 큰 선단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당시 우리 군사에게 크게 패한 바닷가에 자리 잡은 포구였다. 지금도 옛날의 선창 자리가 남아 있으며, 부근에 대나무가 많다.

대매 동쪽 지역을 미명골이라 부르는데, 조선시대 한산이 모시와 목화솜으로 유명할 당시 목화를 많이 심어 생산하던 마을이라 면동이라고 하다가 미명골이라 했다고 한다.

마을 서쪽 미명골 쪽으로 샘이 있는데, 이 샘을 찬하샘이라고 하며, 샘이 깊어 명주꾸리 세 개의 실이 들어가는 깊이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미명골 북쪽의 산을 두름배라 한다. 이는 산 중앙에 두루미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죽산리에는 백제시대부터 생긴 나름막골이라는 나루가 있으며, 이는 전라도 나포와 왕래하던 나루라 한다. 미명골 서북쪽에 있는 알매산은 모양이 알처럼 생겼다 해서 그러한 이름이 붙었으며, 갈막재, 매봉재 등으로 불리는 산과 등성이가 있고, 서쪽에 있는 산은 모양이 둥글게 생겼다 해서 동구재라고 한다.

미명골 남쪽에 위치한 마을을 수막골이라 하며, 심마동(深馬洞)이라고도 하는데, 백제가 망하고 주류성에서 복신좌평(福信佐平)이 군사를 일으켰을 때 말을 감추어 놓고 기병을 대기시켰던 마을이라 한다. 그 후 주류성이 함락되자 나당군(羅唐軍)에게 쫓긴 백제 군사들이 말을 풀어 도망치게 했는데, 군사는 없어도 밤마다 들에 말이 나타나서 구슬프게 울곤 하였다는 자리에 마을이 생겼다 하며, 밤에 말이 주인을 찾으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어 심마동이라 부르다가 그 후 수막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망개라 부르는 지역은 백제가 한창 번창했을 때 이 마을에 집이 만호(萬戶)나 빽빽이 들어섰다해서 만개라고 하던 것이 변하여 망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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