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넘치는 이인자 씨
마을회관 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벼락 바위를 지나 구불구불 걷다 보면 커다란 벼 건조기가 보인다. 주욱 정갈하게 줄 서 있는 농기구들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있는 집, 화초가 환하게 웃는 이인자 씨 댁이다.
“여기가 아줌마네 집이야.
강아지 예쁘지?”
마당에 펼쳐진 채반 위에는 조글조글해진 알대추들이 햇볕을 쬐며 누워 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들을 반갑게 맞아 주시더니 가만있어 보라며 아래로 내려가신다. 얼마 뒤 잘 익은 대추 세 알을 불쑥 내민다.
“먹어 봐. 요때가 대추가 맛있어.
워디 가서 대추를 눈으로 보면 하나씩 먹어야 된대.
그래야 안 늙는대.”
“대추 고르고 있었어. 근데 다 벌레탱이야. 어디다 쓰려고 하냐고?
이렇게 찢어서 떡 할 때도 넣고, 약식 할 때도 넣고, 인삼 넣고 차 끓일 때도 넣고. 한약 할 때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게 대추잖아. 쓸 데가 많아. 대추는.”
척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채반에서 알대추들이 이인자 씨의 손을 따라 넘실넘실 구른다.
“시집오면서부터 이 채반이 있었어. 이게 뭔지 알아? 무슨 나무인지? 싸리. 싸리나무라고 들어 봤어? 싸리가 원래 가늘잖어.
근래는 산에 다니면 싸리 보기 힘들어. 근래는 대나무 뻐개서 많이 만들지만 더 위에 옛날에는 싸리로 만들었지. 지끔은 이런 거 없지이.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친정에 가니까 있길래 채반 두 개랑 소쿠리 하나랑 갖고 온 거야. 요새 이런 거 진짜 귀햐.”
싸리나무로 만든 귀한 채반. 어머니에서 딸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세월과 정이 채반을 타고 이어진다. 수 십 년, 어쩌면 백 년 넘는 세월 동안 채반은 무엇을 담아 곱게 말렸을까?
“채반에는 호박 쓸어 말리고, 가지 쓸어 말리고 그랬지.
우리 시어머니도 그런 거 많이 말리셨어.
소쿠리? 소쿠리는 흰떡 할 때 있지?
쌀 같은 것 일어 가꼬 소쿠리다 건져서 물 빼는 데 썼지.
요새는 나이롱 바구니로 많이 하지만.”
“컹컹! ”
이인자 씨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하얀 개가 저 좀 보라고 짖는다. 이인자 씨를 따라 하얀 개를 보러 간다. 이인자 씨를 본 하얀 개가 반가워 이리저리 겅중겅중 뛴다.
“아이고. 백호야. 언니들이 왔지? 반갑지?
야, 너 언니들이 사진도 찍어주고. 우리 백호 호강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