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구항면 황곡리 하대마을(4)
[홍성군 마을 이야기] 구항면 황곡리 하대마을(4)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09.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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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풍경

  마을 안, 눈에 닿는 밭마다 일렬로 평평하게 다듬은 두둑에 이듬해 수확할 양파와 마늘이 심어지고 있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내년에 먹을 농작물을 미리 심고 준비하고 나면, 농부들은 기나긴 겨울 휴식기에 들어간다.
  도로 반사경과 나무 사이에 긴 줄을 동여매고 시래기를 말리는 풍경. 시골마을에서는 모든 장소가 농사일의 일부가 된다.
어느 집 마당에 놓인 손때 묻은 의자 두 개. 이 의자는 마실 나온 손님의 휴식터가 되고, 다정한 두 부부의 등을 받쳐주는 지지대가 되기도 한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 길가에 흩날리고 있는 낙엽들, 붉은색, 노란색 옷을 입은 숲. 가을이 소리 없이, 잔잔하게 마을 안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 염소들부터 동네 강아지들까지 모두 순하고 얌전했다.
  11월 중순, 며칠 동안 전기공사로 윗말이 분주했다. 바가지 차를 타고 전봇대로 성큼성큼 올라간 아저씨들이 “한 장 찍어줘.” 하고 웃어 보였다. 가을과 겨울 사이,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춤을 추고 있는 나뭇잎들. 몇 주 전에 심어놓은 양파의 가느다란 잎이 아침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양파는 통통하게 여물어간다. 
  10월에 수확해서 말린 벼를 다시 자루에 담고 있는 김오남(59), 이유순(62) 부부. 한 사람이 자루를 잡으면, 한 사람이 삽으로 벼를 퍼서 담는다. 이렇듯 농사라는 것은 호흡을 맞춰 함께 하는 것. 자루에 담긴 벼는 도정을 거쳐 깨끗하고 하얀 쌀로 밥상에 오를 것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오후, 황선필(57) 씨와 가족들이 서둘러 양파 모종을 심고 있다. 빗줄기가 굵어질 때마다 손길이 더 빨라지고, 소쿠리에 담겨있던 파릇한 양파 모종이 어느새 밭 한가운데 가득히 채워졌다. 턱굴에 사는 김영철(80) 씨. 10년 동안 3반 반장을 맡고 있는 그의 구수한 말씨와 푸근한 인상이 정겨웠다. 주말에 오는 자녀분들과 함께 겨울맞이 김장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내분과 예쁜 사진을 한 장 찍어드리고 싶었으나, 부끄럽다며 손사래 치셔서 아쉽게도 김영철 씨 얼굴만 담아보았다. 
  초록 대문 안, 임승희(81) 할머니가 입은 옷과 맞춤 색인 붉은 팥을 고르고 있다. 싸르르르 싸르르르- 팥을 고르는 소리. 곶감 말리랴, 김장하랴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논밭에서 넉넉하게 얻은 곡식 덕분에 다가올 겨울이 평화롭다. 
  집 대문 앞에 나란히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황규원(75), 전문수(66), 김흥수(66) 씨.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황규원 씨 댁으로 마실을 나왔다. 앉은 자리에서 수다 삼매경.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오전, 전용찬(77) 씨가 올해의 마지막 고추를 따고 있다. 줄기가 누렇게 변해도 여전히 새빨간 빛을 띠고 있는 가을 고추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하대마을 최고령 여자 어르신 중 한 분인 최오순(91) 할머니. 이제 허리가 점점 굽고 다른 사람의 말이 귓가에 잘 닿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눈빛을 하고 계신다. 사진기를 한 번 봐달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힘을 주신다.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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