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월계1리(1)
[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월계1리(1)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09.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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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농사1

  늦은 가을, 해지는 시간이 부쩍 빨라진 오후. 해질녘의 마을 길을 걸으면 저녁 무렵의 밥 짓는 연기, 낙엽 태우는 연기가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을 길을 걷다 문득 낮은 산에 폭 둘러싸인 어느 옛 시간의 월계1리를 걷고 있는 듯하여 놀라움을 느낀다. 옛 농부들의 일터와 삶터가 월계1리 마을 풍경 속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장곡면의 굽이굽이 산속 땅에 자리 잡고 뿌리내리며, 땅과 함께 분투하며 살아온 월계1리의 예스럽고 새로운 농부들. 그들은 제도나 혜택, 세상의 손길이 늦되게 닿아도, 주어진 땅이 진자리든 마른 자리든 묵묵히 그들의 땅을 일구고 가꾸었다. 그렇게 땅이 주는 알곡과 열매를 모아 아무것도 없었던 땅 위에 집과 자손이 든든히 자리 잡을 뿌리 깊은 터전을 일구었다. 월계1리 농부들의 알곡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삶의 조각을 짧은 지면에 담아보았다. 
  진자리 농사 이야기
  녹색혁명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불던 녹색혁명의 바람이 가난의 굴레에 묶여있던 대한민국의 농촌에도 불어왔다. 세상이 바뀌어 감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도시와 녹색혁명의 바람이 부는 농촌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량 생산과 기계화라는 새로운 세상의 방식은 근현대 두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하는 이 땅의 농부들에게도 혹독한 가난과 생존을 벗어나게 할 사다리가 되었다. 내려올 수 없는 사다리에 올라탄 우리는 여전히 계속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우리가 올라탄 사다리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근현대 전환기의 피할 수 없는 사다리를 올라탄 농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무엇일까 실마리를 더듬어본다. 
  퇴비반과 식량 증산
  당시 국가적으로 식량증산이 장려됐다. 농촌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퇴비장을 설치하고 퇴비를 생산했다. 또 추수가 끝난 논에 볏짚을 넣고 땅을 갈아서 겨우내 밑거름이 되게 했다. 오흥민, 한순자님 부부는 당시 이장을 맡아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갖고 있었다.
  “얼마나 꽉꽉 쌓아가주구 퇴비 만들었다구. 면사무소 산업계 직원들이 우리네 와서 막 며칠씩 자가며 같이 퇴비 얼마나 쌓았나 대니며 쟀어. 얼마나 어려웠다구 우리 이장 볼 때가 최고 어려웠어.” (한순자, 71세)
  “그렇고 또 뭐여, 그때만 해도 논에다가 전부 저 볏짚을 넣고 갈으라고 했지(추수 후 경운). 그때부터 말하자면 식량 증산을 시킨 거여.” (오흥민, 72세)
  “그 뒤로 식량 증산이 되었나요?” (청마단)
  “그랬지. 처음은 200평 논 한 마지기 쌀 두 가마 정도 나오다가 그 통일벼라는거 나오구 할 적부터 세 가마 정도 나오다가. 지금은 논 한 마지기 보통 네 가마 나와. 그런데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가서 한 20년 동안 쌀값이 후퇴 한 거야. 쌀은 증산됐고 물량은 남고 뭐 이렁께 가격 보상 지지가 안돼서 농민들이 한참 고생했는데. 지금에 와서 20년 전 가격이 금년 가을부터는 오른다고 그러데.” (오흥민, 72세)
  “어려워도 그때부터 부자 된 거야. 그때는 보리밥만 먹고살았어 뭘.” (한순자, 71세)
  경지정리, 주민들의 숙원 사업
  월계1리의 경지정리는 2000년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 경지정리를 기다려온 주민들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묵묵히 땅을 일구었다. 
*경지정리는 약 66헥타르의 농지를 대상으로 사업비 총 25억 7000여만 원을 들여 정지작업 및 용수로, 배수로, 농로 등을 설치한 사업이었다. 추수 후 11월에 시작하여 모내기를 앞둔 다음 해 5월 경지정리가 무사히 끝난 후 월계지구경지정리 농가화합잔치가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당시 경지정리추진위원장이었던 오흥민님은 관련된 분들에게 감사패를 드리고 홍성군 내 기관단체장들이 다수 마을 잔치에 참여하였던 뜻깊은 날이었다. 
                                                       *자료출처 홍성신문 읍면중계탑 2001.06.20
  “논 두렁이 고불고불 대가주구 농사짓기도 어렵고 뭐했는디. 여름에 집중 호우가 오면 논둑이 다 무너져가주고 아주 죽을 고생했지. 산에서 나무 비어다가 전부 뚝 메기 하느라구. 여기 지역구 국회의원 그런 사람들한테 계속 경지정리 좀 하자고 건의해서 결국 2000년도 시작해 2001년도 끝난 거야. 지금은 전부 밀어서 다시 반듯반듯하게 정리를 했지.” (오흥민, 72세)
  “경지 정리 전에도 기계로 농사를 지으실 수 있었나요?” (청마단)
  “어렵지, 그렁께 농사 일하기 훨씬 더 힘이 들었지. 그때도 경운기로 갈다가 나중에 경지정리 하면서 트랙터루 갈구. 인저(지금은) 콤바인 들어가고.” (오흥민, 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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