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84세, 장곡 모산리 출신
마을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안골을 서성이던 중 드르륵- 유모차 소리와 함께 밝고 경쾌한 목소리의 이정희 할머니를 만났다. 다양한 호미의 연대기를 보여주겠다며 조사단을 집으로 초대한 이정희 할머니의 호미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호미의 연대기란 말이 재미있어요. 평소에 호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호미도 다 나이가 있어서 연대기라고 했어. 정말 오래된 애들이지. 하하. 호미를 사서 쓰고 저기 어디다가 둬도 사라진 애들이 더 많아. 호미는 3년만 써도 이렇게 닳거든? 그럼 또 새로 사. 새로 사서 조금만 써도 또 닳으니까 또 새로 사.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다 가지고 있을 거야. 호미의 시간이니까 연대기지. 아마 안골 여자들은 대부분 호미를 쓸 거야.”
◇ 특별히 애정이 가는 농기구가 있나요?
“농기구 중에서 내가 하는 일은 다 호미로 하니께 호미가 제일 좋아. 주로 호미로 밭 매는 거 많이 했어. 팥 심고, 깨도 심고, 고추밭도 매고. 밭에 곡식을 안 심는 게 어딨어. 다 때가 되면 해야지. 서서도 하고 앉아서도 하고. 근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서 많이는 못 할 것 같아. 호미나 옛날 농기구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자주 나. 옛날에는 베도 짜고 별거 다 했었어.”
◇ 제일 좋은 농기구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추억이라. 아까 말한 것처럼 농기구들 다 나이가 있어. 이 호미들도 다 나이가 있지. 제일 작은 이 호미는 우리 손자가 지금 서른셋인디 애기 적에 가지고 댕겼으니까 한 30년 넘었겠네. 손자 태어나기 전에 썼던 거거든. 기억에 남는 건 내 손자가 조금 자라니까 이 작은 호미를 들고 이 할머니를 따라서 밭을 메겠다고 쫓아 댕겼으니께. 30년이 아니라 한 40년 됐을 거야. 50년은 안 됐을 거고. 그렇게 그 호미를 보니까 좋더라고. 오래오래 썼어. 호미들은 광천장 철물점에서 샀지. 옛날에는 호미도 갈아다가 썼는데 이제 가는 사람이 없어. 다 새로 사지. 호미가 자꾸 닳아서 새로 사다 보니까 이렇게 많아졌네. 새로 산 건 날카롭지? 오래 쓰면 닳아. 내년 여름만 되어도 또 닳을걸.”
해가 사위어가는 시간, 이정희 할머니는 다정한 손길로 호미들의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다. 호미들은 봄날, 다시 찾아올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며 하나둘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