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이야기] 장곡면 죽전마을
[홍성군 마을이야기] 장곡면 죽전마을
  • 임미성 기자
  • 승인 2021.10.19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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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아! 70년대! 민초의 손으로 일군 죽전
저 멀리 하늘색, 붉은색의 함석지붕이 솟아 있는 죽전마을 큰 뜸 전경
저 멀리 하늘색, 붉은색의 함석지붕이 솟아 있는 죽전마을 큰 뜸 전경

  죽전마을은 장곡면에서 가장 처음으로 새마을사업을 진행했습니다. 1971년 새마을사업을 시작으로 1978년 저수지가 준공되기까지 마을의 삶과 풍경을 바꾸는 대공사가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직도 마을 어르들의 손에는 당시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죽전마을 땅과 주민들이 지닌 그 시절 생생한 기록과 현재 변화된 마을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삶터의 변혁을
  새마을 사업, 마을 논과 공동기금 마련
  아! 70년대, 이 땅 선배들의 전성기. 
  맨손으로 땅을 개간하고 함석지붕을 해 올리고 물길을 넓혀 
  삶의 변혁을 스스로 일구었던 그 시절.
  고생스러웠지만 정말 재미있게 살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할머니도 새마을 사업 때 리어카 끌고 일하셨어요?” 
  청마단의 질문에 전성기 시절로 여행을 떠난 듯 어르신의 눈이 반짝인다. 
  김난순(87), 김흥예(86) 할머니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답을 해주셨다. 
  김난순 : 리어카 했지. 뭐를 못해 다 하고 다녔지. 담장하러 다니고 리어카 끌고 서로 갖다가 붓느라고 부어주고 끌고 다니고.
  김흥예 : 새마을사업할 때 짚 같은 거 걷어 내리는 거 하면은 그럼 그것들 리어카로 해서 어따 갖다 버리고, 그냥 막 여럿이 끌구 다니고 그랬어. 그러지 뭐.
  김난순 : 지붕 개량하고 그전이.
  김흥예 : 다 긁어다가 리어카에 실어 담아서 막 그랬지. 다들 낫으로 착 착 쳐서 싣고. 쓸기도 하고
  김난순 : 아이고 지붕 걷어 올리는 건 다 (낫으로) 치고들~ 여자들 한 집에서 둘이건 싯셋이건 나와서 그냥 갖다 퍼 붇고. 여자들도 새마을사업 때.
  김흥예 : (새마을사업) 하는 집들은 하고, 함석집은 (집집마다)다 했지. 우리 할아버지는 함석으로 지붕하고 그런 거 했지, 뭐.
  그 때는 리어카 끌고 다니며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김흥예 : 지금은 리어카 없어졌어. 그때는 다 리어카로 했지. 리어카 끌고 앞에서 이렇게 끌고 뒤에서 밀고 그런 거 했지.
  일하실 때 많이 힘드셨겠네요.
  김흥예 : 그렇지. 그땐 힘든지 몰랐어. 그땐 일 잘했어 젊어서.
  막 무거운 것도 들고 다니셨어요?
  김흥예 : 응 머리에 이고. 탑 같은 거 뒤집어쓰고 그랬지. 지금들 얼마나 좋아 깨깟하니.(웃음)
  할머니 그럼 리어카 나르면서 재밌는 일도 있었나요?
  김흥예 : 그렇지. 여럿이 놀아서 잠깐 쉬기도 하고. 앉아서 잠깐 또 얘기하고 놀고 그냥 그랬지.(웃음).
  온 마을 사람들이 뛰어들어 초가지붕을 낫으로 쳐 내리고 나무를 켜 올린 후 함석지붕을 얹었다. 초가지붕이었던 죽전마을 풍경은 색색의 뾰족한 함석지붕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모두 힘을 합쳐서 큰일을 해낸 기억은 생생하게 만져질 듯 남아있다.
  “그땐 일 좀 했죠. 국가에서는 그냥 호되게(지원 많이) 안 받았어. 
  그냥 초가집 우리네 동네 자체적으로, 말하자면 짚 엮은 거초가지붕 있잖여. 그거 뜯어내고서 함석을 올리구 기와 올리구 저거 했지. 
  그때는 참 단합이 잘 됐었어. 
  하천에 가서 벽돌 빼다가 다리랑 짓고 그때는 일들 많이 했지.”
  - 김기성(72세, 남) 
  1973년도에는 주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일군 새마을사업으로 대통령 상을 받았다. 당시 받은 상금 100만 원으로 마을 정미소방앗간와 창고를 지어 마을 사업을 운영하며 공동 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가 72년도에 김기도 씨라고 그 사람이 이장할 때여. 
  그때 열심히 해서 참.. 
  어른들께서 협조관계협동로 해서 새마을사업도 잘 하고 지붕 개량 다 해주고. 몇몇이 아저씨 돌아가셨는데 솜씨 좋은 누구는 지붕 뜯고, 누구는 벽돌 빼고. 벽돌도 하천에서 자갈을 파서 던져서 벽돌을 뺐어. 모래를 주민들이 직접 쳐서 벽돌을 빼가지고 새마을사업 정미소를 지어서 부락에서 이용했어. 이 아래 여기 오다 보면 정미소 그거 아녀.”
  - 김동섭(77세, 남)
  지금처럼 대단위 미곡종합처리장이 없던 시절 마을 정미소는 훌륭한 마을 사업 아이디어였다.
  “73년도에 그때는 지금 같지 않고 정미소가 잘 됐어. 
  부락에서 대지를 선택해가지고 정미소를 지어서 부락에서 한 번 이용해보자. 돈 벌자 해서 한 건데. (이장하고) 새마을 지도자하고 돈 관리를, 찧는 사람(정미소 직원) 월급 주고, 누구 뭐 얼마 주고 남는 이율 있잖여. 그걸 관리하고 하다가 우리 부락에서 점점 신경 쓸 일이 많잖여. 그래서 개인에다가 팔고 마을 논을 샀지.”
  - 김동섭(77세, 남)
  1980년 마을 사업이었던 정미소를 팔고 마을 공동 소유의 논 1200평6마지기을 샀다. 마을 논은 가가호호 1년씩 돌아가면서 경작하고 매년 *1마지기당 쌀 한 짝씩을 마을 공동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소유한 농지가 적은 가구가 우선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2019년 올해까지 순서가 돌아가지 않은 집이 5집 남아 있다. 농지가 충분한 가구는 짓지 않고 넘어갔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한 주민이 8년간 농사를 지었고 2019년에는 새로운 주민이 농사를 짓는다.
  마을 논을 맡은 주민은 반장 역할을 함께 맡는다. 반장이 하는 일은 마을 상수도 계량기를 확인하여 가구마다 사용한 금액을 환산하고 알리는 일과 이장님의 마을 일을 돕는 것이다. 40여 가구의 상수도를 확인하고 알리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고 한다.
  마을 운영을 위한 소득 사업과 땅에 대한 공동 소유를 70년대에 마을 주민이 스스로 만들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죽전마을에서 **골든타임 7년을 맞고 있는 한국 농촌 마을이 다시 꿈꾸는 ‘오래된 미래’를 엿본다. 죽전마을에서는 앞으로 마을 논을 어떻게 가꾸고 이어가려고 하고 있을까?
​  “그전 20년 전에 어른들이 (마을 논) 장만해 놓고 돌아가셨어. 
  그러니께 우리가 어떻게 하나.  팔아먹지 말고 나가야 하잖어. 
  그러니께 마을 기금으로 받아서 쓰고 그렇게 해나가는 거여.”
  - 김동섭(77세, 남)
  죽전마을에서 사람과 역사 그리고 땅이 긴밀하게 묶여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농업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농지에 대한 가치가 쉽사리 금전의 가치로 뒤바뀌고 있는 저항하기 힘든 흐름이 있다. 그럼에도 죽전마을의 공동 농지에는 물려받은 땅, 보전해야 할 공동의 자산이라는 농지에 대한 의식의 원형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이것은 죽전 마을 온 주민이 오직 농사로만 생을 살아온 저력이 아닐까 싶다.
  *1마지기당 쌀 한 짝/ 1마지기는 200평이다.
  쌀 한 짝은 한 가마니를 뜻하며 한 가마니는 80kg이다.
  **골든타임
  농촌 마을의 현재와 마을 만들기 지원 활동의 진행 상황 그리고 대외 여건의 변화가 농촌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향후 7년이 농촌 마을 살리기의 골든타임이라는 말이다. 출처: [충남 마을 만들기 사업의 비전과 내용]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2016년

[출처]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블로그|작성자 홍성군 청년마을조사단(김새롬, 이은정, 전윤지, 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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