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장곡면 죽전마을
[홍성군 마을 이야기]장곡면 죽전마을
  • 임미성 기자
  • 승인 2021.10.20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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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아! 70년대! 민초의 손으로 일군 죽전 2

  물 길을 내다
  마을 수리조합, 광천천의 물줄기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논인 넓디넓은 죽전마을. 벼농사를 짓기 위해 물 길을 내고 논까지 물을 끌어오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넓은 들판 한가운데로 물길을 만들 던 기억이 구레개울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지명에 담겨 있다.
  “구레개울 말하자면, 경지정리 허기 전이 하천, 냇갈 고랑이 구레개울이여 운용리 건너가는디. 이게 구레개울 질길 빠지는 도로구먼 그려. 일로 건너가는 여께가 똘이 있었지. 광천집께로로 내려가는 구레개울.” - 김동섭(77세, 남)
  2019년 1월 마을을 흐르는 광천천의 물줄기가 가늘다. 벼농사 철이 다가오는 봄이 되면 저수지의 수문이 열리고 광천천의 높이는 훌쩍 높아져 있을 것이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 광천천의 물줄기는 지금 보다 훨씬 컸다. 큰 비가 오면 범람하곤 했던 광천천에 중간중간 갖가지 이름의 보를 놓아 농사를 위한 취수를 하였다.
  중리보, 하니보, 큰보, 쏵새보, 밭디보, 뚝너머보, 새보, 돌논보, 갱이보.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름만 이렇게나 많다. 논과 땅에 맛깔나는 이름을 붙이던 사람들은 보마다 이름을 지어 불렀다. 이름을 지어 불러야 어느 논으로 품앗이 간 아무개를 집에 와 점심 먹으라고 부르러 갈 수 있었을 것이고, 어떤 보가 망가져서 손을 써야 하는지 이장에게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특색 있는 보의 이름들은 광천천이 흘러가는 길에서 만나는 부락과 지형지물을 담고 있다. 보를 놓아 한 해 농사짓고 나면 보는 사라지기 일쑤였다.
  “예전에 보 치러 간다고, 밥해주면서 보 치러 간다고(했었어). 
  농사지으려면 보를 쳤어 물 내려오게. 전에 나 처음 시집와서 한 2년이나 했나 3년이나 했나. 그렇게 오래 안 됐어. 그렇허구서 저수지 이거 막었어.” 
  - 박명숙(73세, 여) 
  광천천을 끌어오는 것으로는 논농사를 짓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관정을 파도 지하수가 나오지 않는 죽전리는 비가 내리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 해 비가 드물어 가무는 날에는 고비가 찾아왔다.
  “옛날에는 저기(저수지) 막기 전에 전부 하천 냇가 물로 댔는데 
  가물어서 안 나오고 이 논도 구석지다가 툼벙 팠어. 
  툼벙 파 가지고서 물로 떠 올려서 농사짓고 그랬어. 
  물꼬 싸움도 많이 했지.” 
  - 김기성(72세, 남)
  가물면 논에 물을 댈 수 없었고 큰 비가 내려 하천이 넘칠 때마다 설치해 놓은 보는 떠내려갔다. 70년대 죽전마을을 비롯한 광천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군의 허가를 받았다. 저수지 자리에는 한이마을이 있었다. 행정 구역 상 한 동네이지만 큰뜸과 거리가 꽤 떨어져 있던 한이 마을에는 막걸리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지, 거기서 놀기도 하고 가서 일은 안 했지. 
  거기가 옛날에 술 파는 막걸리 집 있어서래미 술 받으러 갔어.”
  - 김흥예(86세, 여)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한이마을은 저수지 공사로 인해 물 아래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친인척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 대부분 떠났는데 두, 세 가구가 죽전리에 남았다.
  “한 동네는 아니더라도 동네 사람 암치로처럼 사는 사람 다 떠나가서 저거서운 하니께. 거기 옛날에 이장하던 사람도 우리 아저씨랑 한양같이 일하고 할 때 우리 집에 내래 밥도 많이 차려주고 그랬어. 
  한 동네는 아니더라도 저수지 막아서 갔는디 좀 서운하데, 다 헤어지니께.” - 김흥예(86세, 여)
  헤어짐의 아쉬움을 마음에 담고 저수지를 짓기 위한 하천 정비 공사가 시작되었다. 마을에는 수리조합이 결성되었다. 수리조합 감독은 이금영 님이었다. 하천을 정비하고 둑을 쌓는 일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여기 하천 제부뚝 공사하느라고 군이서 밀가루 줬지. 
  그때 말하자면 하천 큰 뚝을 쌓는디 그때는 장비도 없구 인제 지게로 져 올려 갔구서 하루에 밀가루 몇 키로씩 주기로 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지. 그거 보고 뚝방이라고 하잖아. 글루 지금은 차 다녀.”
  - 김기성(72세, 남) 
  주민들이 참여하여 쌓은 둑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길이는 말하자면 여기서 저 초등학교 있는데 대평초등학교 고기 가면 다리 있잖여, 그 다리 있는 데까지. 래가지고 지금 버스 다니고 있지.” - 김기성(72세, 남)
  죽전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는 96번 국도를 달리다 드넓은 논 사잇길로 들어서 마치 끝이 없을 듯한 들판 사이를 달려 마을로 들어온다. 국도변 마을 진입로부터 죽전교를 건너기 전까지 둑방길의 길이는 약 973미터에 달한다.
  “그 독 놓으러 댕길 때. 잊어버리지도 않어. 딱 한 달 하루 댕겼어. 
  극성맞게 돌아 댕겼어. 거 독 쌓으러 다니다가 내 손가락 다 깨트렸어. 긍게 이만한 철망이 있거든? 거기다가 바윗돌 찬찬 집어넣어. 망에다 담아서 놓잖어 안 봤어? 하다가 놓치면 이만 한 돌 깨지는 거여. 
  그게 냇갈에 지금도 철망 있어”  - 천연순(80세, 여)
  “지게 지고 안 나오면 안 써준다고 해서 나하고 천희 엄마하고 둘이가 지게 지고 갱변에(강변에) 가서 지고 대녔어. 그러고 극성맞게 다녔어. 지게 지고 막 흙 파 올렸지. 흙 지고 댕기고, 머리 지고 댕기고.”
  - 천연순(80세, 여)
  농사짓는 일 말고는 소득을 올릴 기회가 없던 농촌 마을에서 수리조합의 하천정비 사업은 마을 주민들에게 소득의 기회가 되었다. 마을의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마을의 대형 토목공사에 뛰어들었던 억척스러웠던 기억과 몸의 흔적이 어르신들에게 너무나도 선연하게 남아있다.
  하천정비와 함께 드디어 36헥타르의 땅을 가르는 큰 보가 둘러 쳐지고 17만 3천 톤의 물이 가두어졌다. 장곡저수지는 죽전과 인근 지역 255 헥타르의 농경지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물 걱정 없이 농사짓는 날을 열었다.
  “어떤 지리학자가 이 동네 물이 안 떨어지면 부자가 된다 했디야. 
  근디 저거 막고 물은 안 떨어져. ”
 - 박명숙(73세, 여)
  70년대의 농촌 마을에 숙명 같던 가난과 생활의 불편함이 서서히 벗어지고 풍요가 찾아왔다.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농촌에서 나고 자라며 땅 위의 삶을 일궈온 어르신들이 온몸으로 지나온 공동의 흔적이다. 70년대를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 중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올곧이 이 책에 담아 드린다.

아름다운 장곡 저수지 풍경
아름다운 장곡 저수지 풍경

[출처]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블로그|작성자 홍성군 청년마을조사단(김새롬, 이은정, 전윤지, 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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