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대등리(大等里)
[지명유래] 서천군 화양면 대등리(大等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10.2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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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을은 조선 말 한산군 동하면의 지역으로 등상리(等上里)와 남하면 대상리(大上里)를 합하여 대사동의 이름을 따서 대등리라 하여 서천군 화양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자리 잡은 큰 마을은 한저울이라 하는데, 이는 옛날에 마을 뒷산 중턱에 큰 절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 절 이름이 큰절, 한절, 또는 대사였던 데서 유래 되였다고 한다. 지금도 뒷산 절터로 추정되는 지역 주변의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 절은 옛날 빈대가 많아 불을 놓아 태워서 없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저울에서 동쪽으로 등칠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지명은 뒷산 등성이가 일곱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등칠이 변하여 등출이라고도 하는데 등을 들고 나오는 듯한 지형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등출 북쪽 옆에 있는 골짜기를 홍지곡이라 하며, 이는 빨간 흙이 있는 골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
라 한다. 등출 북쪽에 있는 지역을 뱃챙이라 하는데, 이곳의 지형이 배의 아래처럼 생겼으며, 땅을 팔수록 물이 고인다고 한다. 물이 고이는 그 땅 아래 자갈이 깔린 냇물이 있어서 냇물 위로 흙이 덮여 있고, 그 위에 풀이 숲을 이루었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물이 고이는 곳이 황토흙이면 명당이라고 한다. 지명이 처음에는 뱃창이라고 하다가 변하여 뱃챙이가 되었다 한다.
  또한 등출 북쪽으로 비석날이라 부르는 지역이 있는데, 산등성이에 비석이 서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등리에는 옛날 감독골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 샘이 있었는데 물맛이 유난히 좋아서 한산 현감이 이 물을 길어다 마셨다 하며, 한산 물장사들이 산을 넘어와 길어다 팔기도 했다고한다. 이밖에도 대등리 위쪽 마을을 위뜸, 아래쪽 마을을 아래뜸이라 하고, 대숲이 많아 대섶안이라 부르는 지역과 대섶안에서 서쪽으로 죽산이라 지칭하는 곳이 있으며, 그 곳에는 아주 오래된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한저울에서 등칠로 넘어가는 지역에 쇠쟁이라는 곳이 있는데, 전에 소정(昭亭)이라는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저울 위뜸 동쪽 끝에 지치매골이 있고 그 앞에 앞동산, 등출로 넘어가는 등성이를 안산이라 한다. 마을 앞에는 마을나무로 지정된 보호수가 두 그루 있는데, 마을 입구 쪽 대하리로 가는 길목에는 2백여 년 된 팽나무가 있고, 마을 가까이에 170여년 되는 느티나무가 있어 마을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보호수로는 지정되지 않았으나 위뜸에서 대섶안으로 가는 길목 마을 중앙쯤에 큰 팽나무가 한 그루 있어 마을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뒷산에는 석질이 좋은 돌이 생산되어 한동안 이 마을에 석수장이가 살면서 돌절구와 돌매 등을 만들어 팔았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 생산된 돌절구는 전국에서 그 석질의 우수함과 형태의 수려함으로 수집가 들에게 많은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에 양학당이 있었으며, 이는 60년대 초까지 존재했었다. 일제시대 마을 출신 故최인환씨가 서당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가 김인전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과 신학문 보급에 힘썼다.
  마을 앞에는 석북공 신광수 묘소가 있어 최근에 군의 지원으로 재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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