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마을 톺아보기②
[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마을 톺아보기②
  • 임미성 기자
  • 승인 2021.12.08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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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리 맥가이버 이선치(1)

옥계2리는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이광윤 묘가 있는 곳을 재실, 별티저수지 너머를 별티, 재실과 별티 사이를 우렁배, 재실마을 북쪽을 떡무늬라 부른다. 별티고개를 중심으로 장곡면 상송리, 대현리, 옥계1리와 경계를 이룬다. 여주이씨 홍주파의 재실이 있어 1973년경에는 총 46가구 중 21가구가 재실에 협조하며 살았다 하여 재실이라고 불렀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등대실에서 등에 지게를 지고, 떡무늬 와서 떡을 싣고, 별티에 와서 별을 보면서 청양군과 옥계리의 경계인 고실대에 가서 고시레를 했다고 한다. 

2002년에 발행된 충남공주대학교박물관에서 발행된 ‘홍성군문화유적분포도’에 따르면 별티 고분군은 마을 북쪽에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구릉의 남향사면 중하단부와 마을에서 동쪽으로 있는 산 구릉 중하단부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향사면 중하단부 고분군은 작은 석재를 이용해 벽을 쌓고 위에 대형 뚜껑을 덮은 고분 2기가 노출되었다고 한다. 마을 동쪽 고분군은 네 벽을 돌로 쌓고 위에 판석재로 뚜껑을 덮은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하지는 않다. 현재 정확한 시기나 기억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은 없다. 다만 마을 최고령자인 채두병 씨는 “예전에 고려장이 많았는데 옛날에 그걸 다 파헤쳐 가기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사지도 발견됐다. 별티마을로 넘어가는 소로의 서남쪽에 작은 소류지가 있었는데 사지는 이 소류지에 인접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지로 전해지는 곳은 계단식의 밭으로 개간되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다. 전언에 의하면 상당량의 기와편과 백자편이 수습되었다고 한다. 지형은 능선 사이의 평평한 골짜기를 이용해 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사지 아래쪽은 별티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됐다. 지금 이를 기억하는 마을주민들은 없으며, 다만 이 근처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옥계2리에 여주이씨가 들어온 시기는 3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여주이씨 홍주파 27대손 이필하 씨의 족보에 따르면 여주이씨 시조는 이인덕이다. 13대 이사원이 1476~1506년 조선 연산군의 폭정과 사화로 사관(仕官)에 염증을 느껴 홍주에 낙향하며 정착했다. 예전에는 50가구 중 30여 가구가 거주했지만 현재는 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한편 1851년에 결성된 보부상 단체인 육군상무우사의 접장을 맡았던 별티마을 출신인 정근모는 논 3마지기를 마을에 기증하면서 마을의 인사로 칭송받았다. 육군상무우사는 홍성·광천·보령·청양·대흥·결성 등 6개 군이 중심이 되어 상권을 형성하며 만들어진 단체다. 마을주민 정진군 씨는 “정근모 씨가 집안 아저씨다. 지금은 보령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별티마을주민들이 해마다 제사에 참석하다가 지금은 나만 참석하고 있다”고 말한다. 

옥계2리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6년경이다. 1948년생 김덕이 씨는 “내가 스물여섯 살에 여기에 왔는데 그때까지 마을에 전기가 없어 초를 밝히고 살았다. 시집오고 나서 3년인가 있다가 전기가 들어온 것으로 기억한다. 오면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 당시 마을에서 그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전화가 들어온 것은 1980년대 무렵으로, 각 가정마다 전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옥계1리 이발소 앞 양약방에 공동전화가 있었다. 시급한 연락을 취할 일이 있으면 옥계1리 양약방 전화를 이용했다고 한다. 

옥계리 맥가이버, 이선치

1941년생 이선치 씨는 옥계리 출신으로 열여덟 살에 가족 모두가 서울로 상경했다. 잇따른 사업 실패를 겪으며 서른일곱 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터를 잡았다. 고향에 돌아와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마음 속 고즈넉한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리움의 대상인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는 일은 생각만 해도 마음 넉넉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금의환향 해 고향에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런다 해서 마을주민들이 그를 터부시하거나 외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서울 삼양동에서 살았어. 안사람은 시골에서 부모들허구 살고. 서울서는 부모허구 동기간들이랑 싹 다 올라갔지. 그래서 호적을 다 파갔지. 그래 본적이 성북구로 되어 있어. 내가 하던 일을 5번이나 실패했어. 장사도 허구, 도시 생활을 못 하겠더라구. 온양으로 갈려구 근거도 없이 돌아다녔지. 근디 타 지역 가서 살기 힘들겠더라구. 돈이 있어서 고향 들어오는 건 들어올 만한데 살기 어려워서 돌아온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여. 보통 힘든 게 아니야. 서른일곱 살에 왔지. 다 넘어가는 초가집, 뗏장 넣어서 만든 집이었어. 비어 있어서 들어 왔는디 시골 오니 좋다보니 온 거야. 시골 오기 2년 전에 부모는 다 돌아가시고 고향 와서 처음 일한 게 집 짓는 목수 일 했지. 허다 보니께 개장사를 하게 됐어. 개장사는 건달 아니면 못 혀. 소 장사는 할 만한데. 가시가 쎄. 장에 갈려고 채비를 하고 나서는데 안식구가 어디 가냐구. 나 토끼 좀 가지고 올려 그래, 하구 나섰어. 첫날 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갔어. 먼저 개장사를 하던 사람 같은데 나이도 어려 보이더라구. 사람들이 워디서 왔냐구 하더라구. 그래 어디서 왔다구. 장사를 못 하게 하는거야. 그러면서 이 아저씨 간댕이가 부었다구 그러더라구. 아, 이 사람아, 붓기는 내 간댕이 얌전허네. 그랬더니 내 오토바이를 쌔려버리는 거야. 염소가 실려 있는 걸. 내버려뒀어. 내가 그 때 녹음기가 있어 가지구 녹음을 했어. 왜 녹음 허냐구. 자네들 혼 좀 내려구 한다구. 자네들만 건달 아녀, 그랬더니 이 아저씨 진짜 간이 밖으로 나왔대. 아, 이 사람아, 간댕이가 밖으로 나온 지 옛날일세, 그랬지. 그 중 누구 하나가 눈치를 챘는지 뭐라 뭐라 하더니 한 씨라는 사람이 와서 텃세 하는 거니 이해하쇼, 그러더라구. 텃세도 그렇게 하지 말고 나보고 얌전하게 술 한 잔 사달라고 혀 그랬어. 그건 살 수 있어. 자네들 전부 몇 명인가. 한 대 여섯 되더라구. 광천 술집에 가서 막걸리 한 말, 돼지고기 두 근 볶아주쇼 그랬지. 자네들 장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여. 처음 온 사람을 가르쳐 줄라고 해야지, 누구는 베짱이부터 배워갔고 오는 거 아녀. 아, 쪼끄만 아저씨가 맹랑스럽네. 자네들이 맹랑스럽지. 내가 맹랑스럽게 한 거 아냐. 그렇게 한 식구가 돼서 몇 년 장사 잘 했어. 그러다보니 개장사들이 평이 나쁜 거야. 개를 사러 오라고 하믄 잔뜩 맥여서 비계가 잔뜩 찐 놈을 팔아. 돼지비계는 먹어도, 개 비계는 못 먹어. 장사 처음 할 때는 나도 그런 거 모르고 했지. 짐승은 차에 실으나 오토바이에 실으나 멀미를 많이 하는데 사람보다 몇 배를 해. 가면서 차에다 쏟는 거야. 다 싸. 예를 들어 50근 개 한 근이면 7~8근은 그냥 없어져. 그 때 개 한 근에 300원인데 50근이면 만 오천 원 아녀. 남는 게 아니라 밑지는 거야. 다 쏟아냈으니까. 그러니까 생산자가 나쁘다는 거야. 개장사가 저울로 속임수를 쓰는 거야. 어느 날 광천 도매집에 개를 사 가지고 갔는데 젊은이 둘이가 40근을 싣고 와서 2만원이 남았다고 그려. 내가 의문이여. 슈퍼로 델고 가서 맥주 다섯 병을 사서 물어봤지, 워떻게 했냐구. 방법 좀 알려줄 수 있나? 저울 꼬다리 50근 짜리는 구멍이 커. 거기 목구녕을 딱 잘라서 때웠더라구. 이놈에 올리면 많이 올라가잖아. 살펴서 보는 사람이나 알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서 가지고 다녀야지, 안 그러믄 적자라구 하더라구. 50근이면 너 근은 더 옵니다 그러는데, 그 말이 맞더라구. 옛날부터 어른들 말씀이 저울을 속이면 삼대를 빌어먹는다는 말이 있어. 난 그걸 못하겄어. 집에 와서 밤새 생각하다가 새벽에 방법이 떠올라. 주인 보고 저녁을 일찌감치 맥이고 아침을 주지 말라고 하고, 한 마리에 두 근씩 빼달라고. 그래야 내가 가져간다고. 두 근 빼주면 반 근만 빠져도 한 근이고 한 근 반이면 두 근이고 그렇잖여. 그 이튿날부터 그렇게 한 겨. 저울은 정확허지. 그러니까 안 밑지더라구. 손해나는 사람 손해나고, 덕 보는 사람 덕을 본다고 하잖어. 그 말이 맞는 거여. 한 10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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