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華山里)
[지명유래]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華山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12.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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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리는 화산과 수출로 나누어지는데, 면소재지가 위치한 마을이며, 기산면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백제시대 마산현에 속했었고, 신라시대는 가림군에 속한 마산현 소속이었으며, 고려시대 임천의 한산현에 속했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한산군이었으며 조선 말에는 한산군 서하면(西下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역촌과 서상면(西上面)의 수출리 일부를 합하여 마을 앞에 있는 화양산의 이름을 따서 화산리라 하여 서천군 기산면에 편입되었다.

소재지를 주막개, 역말 등으로 부르는데, 주막개는 옛날 마을에 주막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역말은 조선시대 신곡역(新谷驛)이 있었던 마을이라 신곡, 역촌, 역말 등으로 불리워진 데 따른 것이다. 큰 뜸은 소재지 북쪽으로 형성된 큰 마을이며, 새로 생겼다 해서 새태라 지칭하는 곳이 있고, 옛날 서당이 있어 서생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해서 서당골이라 하는 지역이 있다.

동북쪽으로 구석에 있다 해서 구석골이라 하는 지역이 있는데, 지금은 이곳에 서천식물예술원이 조성되어 연꽃과 각종 식물, 분재 전시장, 옹기 전시장 등의 볼거리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역말에서 내동리로 가는 모롱이를 아홉모롱이라고 부르는데, 모롱이가 크고 작은 것 합쳐 아홉개가 있는데서 연유되었으며, 북쪽 산속으로 들어간 마을을 수출 또는 문학골, 문학동이라고 부른다. 이는 산골짜기에서 사철 물이 나온다 해서 무닛골, 수출리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다. 지금도 마을 위쪽에 있는 산 밑에 옹달샘이 그대로 있다.

문학골 북쪽 가공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남재라고 하는데, 옛날에 서당의 서생들이 많이 넘어다니던 고개라 한다. 문학골 북쪽에 있는 지역을 갬절이라고 하는데, 갬절이라는 절이 있었다 하며, 지금도 주변에 투박한 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한다. 폐사된 유래는 절에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고 하며, 폐사 된 후 그 곳에 우리 고장 최초의 개신교인 화산교회가 자리 잡았다. 

또한 갬절사지 서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새절매라는 절터가 있는데, 표고 120m의 능선이 남향으로 뻗어 내린 곳에 동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사지 내에 대나무가 우거져 있고 민묘가 다수 있다. 사지라고 할 수 있는 유적 유물은 발견 할 수 없고 다만 고려 때 세워진 절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빈대가 많아 불태웠다는 말이 전해진다. 

마을 앞쪽으로 화양산 밑에 행제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으며, 면사무소 옆 신산리 입구에 효자 성학순 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성학순 정려 비각은 1888년도 건립되었으며, 이 분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효성으로 부모 섬김을 겨울에 잉어와 뱀과 죽순을 구해드리듯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을 뒤쪽 산에 권성의 묘가 있는데, 그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호는 제월제,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본관은 안동으로 1687년(숙종 13)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신임사화(辛壬士禍) 이후 은퇴하고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고 전원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마을에 있는 화산서원은 화양면 구동리에 향현사라는 사우가 시초로 대원군 때 훼철되어 영정만을 모시다가 1968년 현 위치에 영당을 걸립하고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린다. 

당초 권변, 권성 선생 등 2위가 배향되었었으나 1991년 기존 화산사 자리에 건평 32평(본관 28평)의 건물을 신축하고 92년 서원으로 승격되어 새로 5위가 추가되었다. 

현재 권벽, 조수윤, 권필, 홍미, 권양, 권변, 권성 선생 등 이 배향되어 있다. 구석골에 자리 잡고 있는 전 화산교회는 1902년 3월 1일 서천군에서 최초이자 충남에서도 처음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충청노회에서 창립한 교회로 역사적 가치가 높으나 1988년 현재의 기산교회와 합병되어 현재는 그 건물이 농산물 건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화산리는 2004년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서천이색체험마을’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도시인들이 농촌 체험을 위해 많이 방문하는 마을이다. 

이는 이 마을 출신 김재완 전 교장이 사재를 털어 본인소유의 농토에 서천식물예술원을 구성하고 무료로 개방함에 따른 것이며, 이로 인해 김재완씨는 농촌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대산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을에 1933년에 개교한 기산초등학교가 있으며, 이 학교에는 초등학교 전 교재에 나오는 우리의 옛 물건을 전시한 우리문화학습박물관이 있어 타 지역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견학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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