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마을 톺아보기②
[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마을 톺아보기②
  • 임미성 기자
  • 승인 2021.12.09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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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리 맥가이버 이선치(2)

우리 애들이 다 공부를 잘 했어. 전부 충남대 보냈어. 근데 내가 나쁜 이름을 가진 장사를 하다 보니 그게 좀 걸리더라구. 우리 애들도 말은 안 하지만 좀 위축을 받더라구. 그래 내가 사람은 된 대로 사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런 장사를 했다고 조금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아버지가 장사를 했어도 남한테 손가락 받은 짓은 한 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구 했지.

우리 작은 애가 미국 가서 공부를 하는데 졸업식에 오라고 해서 갔지. 미국 가느라 싹 다 팔았어. 염소 40마리, 개 80마리, 소 17마리. 맥일 사람이 읎잖어. 한 달 갔다가 오는디. 맽길라믄 사람 사서 하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소 한 마리 잘못돼 죽으믄 그 먼데서 내가 으떡할겨. 오도가고 못허구. 그 날로 장사도 그만두고 다 그만둔겨. 안식구가 왜 소 사러 안 가냐구. 이제 그만두고 놀러 다녀야지. 내가 뭐하러 혀. 당신도 나도 고생인디. 그 뒤로 하나 안 맥이는겨. 10년 좀 넘었지. 

작은 애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나와 4년 일하다가 아예 이민 갔어. 작년 4월 19일에 갔어. 작은 애 하는 소리가 저희 따라 가자는겨. 저희 형이 있는데 두고 가는 것두 그렇고 말은 고맙지. 근디 ‘난 아버지처럼 안 살어’그 말을 하더라구. 내가 들을 때 너는 공부한 놈이 아버지처럼 살아서 되겄니, 말이 아니잖어. 근데 그 다음에 또 그 소리를 혀. 그 때도 그냥 넘어갔어. 작년에 왔는데 또 하는겨. 저는 아버지 보구 일허지 말라구 하는 소리지. 그거 못 알아들어서 서운한 것두 아니구. 점심 먹고 나서 그 소리를 허길래 너희 다 들어와 봐. 내가 헐소리 좀 해야겠다. 니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해 한 소린데 그런 말을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뭐 잘못 살아서 그런 표현 그렇게 쓰는 것 아녀. 안타까우면 그 뜻을 듣기 좋게 말해야지. 아버지처럼 안 산다고 하믄 아버지가 어서 도둑질해서 니들 맥여살렸니, 어디 사기를 쳐서 먹고 살았니. 왜 표현을 그렇게 쓰냐. 앞으로는 그런 말 당췌 조심해라. 손자 놈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손바닥을 치면서 ‘아!’그러더라구. 걔가 지금 10살인가. 할아버지 말이 옳다는 거지. 잘못했다구는 허지. 뜻은 그게 아닌데. 표현이 잘못 됐다는 겨. 말이란 건 항시 조심해야 된다구 허는 얘기지. 

작은 애가 아버지 일 좀 줄이세요. 근데 그게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줄여지는 것도 아니여. 내가 버릴 수는 있지만 내가 고생고생해서 장만한 건데, 그거를 묵힐 수도 없고 누구보고 허라고 그러는 것도 쉽게 안 되고. 딴 사람보다 내가 생각하는 범위가 좀 넓어. 내가 농사처는 적지만, 나이 먹을수록 기계가 있어야 돼.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가 기계가 다 있다구. 그러니까 생활하는데 넘의 것 빌릴 게 읎어. 다 내 기계로 하지. 전기나 기계 만지는 것도 남의 손 빌릴 게 읎구. 내가 이럭저럭 해서 쓰니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그 의미가 달라졌다. 근대화 이전에 아버지라는 존재는 학식과 명망이 있는 자를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섬겼다. 가부장적인 유교전통사회에서 경제적 관점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오롯이 책임지는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또한 예전에 아들을 앞에 앉히고 글을 깨우치게 한 것도 아버지였지만, 이제 가정에서 아버지가 담당하는 교육의 역할도 사라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감하는 폭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아버지와 자식 간의 삶에 대한 공감이 사라진 부분에는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다’는 원망 아닌 원망만이 남게 됐다. 자식을 향한 이 씨의 마음 속 응시는 이 씨 자신의 기억을 전달함과 동시에,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계획이 들어 있다. 이제 그 응시에 자식이 보답해야 할 차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이 씨가 마루에 앉아 고장 난 시계를 잔뜩 늘어놓고 앉았다. 한때 마을에서 일명 맥가이버로 불렸던 이 씨의 손을 거치면 새 물건이 됐다. 이제는 귀농한 양현모 씨에게 맥가이버 자리를 물려줬다. 서운할 일은 없다. 지금까지 차고 다녔던 손목시계가 개갈 안 난다고 했더니 누군가 손목시계를 하나 줬다. 그런데 이도 초침이 정확하게 가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손목시계를 모두 분해해 이리저리 짜 맞춰 본다. 되면 좋고, 안 되도 상관없다. 그저 그렇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마을주민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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