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사람 사는 이야기③
[홍성군 마을 이야기] 장곡면 옥계2리-사람 사는 이야기③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12.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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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강산을 지켜낸 군인

1933년생 채두병 씨는 군대를 가기 싫어 이리저리 피하다가 결국 군대를 가게 됐는데 막상 가서 근무를 하다가 헌병 시험을 봐서 헌병 생활을 14년 했다. 체질적으로 군인 생활이 찰떡같이 맞았던 것이다. 채 씨의 서랍장에는 오래되고 낡은 병무소집해제증이 들어있다.   

1959년에 발행된 병무소집해제증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글이 담겨있다.‘대통령 각하 유시. 금수강산을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여기 모인 군인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불과 몇 시간밖에 안 되는데 이와 같은 예식을 하게 됨을 볼 때 우리 군대의 주직을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이 기회에 목숨을 바쳐 삼천리 강토를 보호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세상은 약육강식하는 시대 인고로 살게 하고 권리와 대우를 받으려면 온갖 노력을 다하여 나라와 민족을 보호해야만 대접을 받는다. 예비군 장병들은 단단히 준비하고 훈련을 잘해 막강한 군대가 된 후 우리가 북진해야 할 때에 명령만 내리면 수하를 불구하고 앞에 나가 싸워서 사천 년의 금수강산을 통일하며 국토를 보호해야 한다. 이제 레드포드 제독이 우리 군대가 세계서 제 삼위에 가는 막강한 군대라고 말하여 대단히 기쁘게 여기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금수강산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아무 두려울 것 없이 훈련을 거듭하여 조상 때부터 내려온 우리나라를 완전히 하고 남북통일하여 남이 넘겨다보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려운 것을 어렵게 생각지 말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국민 개병제도를 완전히 실시하여 문존무비(文尊武卑)의 사조를 버리고 어디까지나 강한 군력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 김용우 국방부장관, 이형근 참모총장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1959년은 정치적으로 격동기였으며 경제적으로는 불황기였다. 미국의 무상원조가 크게 줄어들지만 정부는 나름대로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경제 기반의 틀을 마련하려 했다. 정치적으로는 1959년 1월 22일 이승만 총재, 이기붕 부총재로 하는 대한 반공청년단이 발족하면서 1960년 대선에서 자유당 체재를 확고하게 했다. 경제적으로는 1950년대 말 삼성그룹이 상업은행, 조흥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16개 계열 기업을 거느린 복합기업으로 탄생하는 등 재벌이 등장했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 군인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군인 생활을 했고, 만기 전역함을 자랑스러워했다. 채 씨 역시 헌병 근무를 자랑스러워하며, 헌병 근무 시절 사진을 지금도 벽에 걸어놓고 있다. 그 당시를 회고하는 채 씨는 비록 몸이 불편한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눈빛만큼은 잔뜩 호기심 어린 다섯 살 꼬마 아이의 그것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1958년 1월 10일 채두병 씨가 병영생활을 마치며 27사단 헌병 동기들과 찍은 사진.
1958년 1월 10일 채두병 씨가 병영생활을 마치며 27사단 헌병 동기들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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