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서천군 기산면 월기리(月岐里)
[지명유래] 서천군 기산면 월기리(月岐里)
  • 류신 기자
  • 승인 2021.12.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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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기리는 월천과 삼기리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시대는 마산현 소속이었으며, 신라시대 가림군의 마산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는 임천의 마산현 소속이었고 조선시대 한산현에 속했다가 조선 말 서상면의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혁 개편에 따라 월천리, 삼기리, 양지리 각 일부를 합하여 월기리라 하여 기산면에 편입되었다.

월기의 으뜸 마을을 달구내 라고 하며, 이곳은 현재의 진료소에서 가공 쪽에 있는 곳으로 옛날에 월기 마을이 이곳에서부터 차츰 서쪽으로 사람이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용샘 너머에 있는 마을을 샘너머 라고 하는데, 조선 말 한산현 건지산 아래에 뽕너머라는 마을이 있었고, 이 마을 한 모퉁이에 약샘이 있었는데 그 샘너머에 마을이 있다 해서 샘너머라고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달구내 동쪽으로 큰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을 용샘이라 하며, 하늘로 용이 올라간 샘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전해지고 용천이라고도 한다.

달구내 동쪽에 있는 바위를 쌍바위라고 하며, 두 바위가 쌍으로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는 상여가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갔고 부녀자들이 명절 때마다 치성을 드렸다 한다. 이곳에는 2기의 고인돌과 서쪽으로 약 50m 떨어져 1기가 더 있어 3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모두 성혈(性穴)이 나타나 있다. 주변에서 간돌칼과 화살촉 등이 발견 된 바도 있다.

이 쌍암마을 오른쪽 산이 테뫼산 월기리 산성이며, 이 산성은 작은 토루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둘레는 약 200m 정도로 성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고 서벽에 회랑부가 남아있다. 산정리 장군봉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현재 월기문화원(전 월기초등학교) 부근의 마을은 역사가 깊지 않고 근래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월기리 앞들이 옛날에는 수리 시설이 안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농경 사회에서 넓은 들이라도 이용 가치가 없어 사람이 거주할 조건이 안됐고, 오히려 가공 가까운 곳의 물 빠짐이 좋은 좁은 농토를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한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곳에는 오래된 묘가 없다.

마을의 흔적만 남아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느라티 라고 하며, 이사리 구렁목에서 샘너머로 가는 중간에서 요즘에도 기와장이 발견되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세거리에서 석동까지 비 오는 날에는 기와집의 처마 밑을 따라 가면 비를 맞지 않았다고 하여 그 당시 많은 집들이 연이어 지어져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에는 사철 물이 많이 나는 샘이 있고 그 샘물로 인해 농사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많은 기와집들이 사가였는지, 사찰 건물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없어졌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샘너머 입구에는 솟대배기 라는 곳이 있는데, 삼한시대부터 시작하여 근래까지 솟대가 있었다고 하며, 솟터는 솟대가 있는 신성한 구역이고 솟터가 신성하다는 것은 바로 솟대를 신성하게 여겼기때문이다.

마을로 올라가면 인소골이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의 기린봉에 말루절이라는 절이 있었다 하며,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이 절에는 속세를 떠난 수백 명의 중이 살면서 이들이 죽으면 인소골에서 화장을 하여 장례를 치렀다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 화장한 장소를 인소골이라고 했다.

세거리는 월천 북쪽으로 있는 마을이며, 마을에 세 갈래 길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거리에서 마산면 이사리 북리로 가는 모퉁이를 벌머치기라 한다.

월기문화원 뒷산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며, 월천 서쪽에 있는 마을을 면우지(소가 누워 졸고 있는 모습의 땅)라고 하는데 이곳은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발전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월기문화원 서남쪽 건너편 들에 메기방죽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옛날에는 물이 많고 메기가 많이 살던 곳이라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밖에 있는 들을 들아랫들이라고 한다. 기록에 보면 이 마을에 부엉배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확실한 위치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월기 앞들은 현재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농사짓기에 편리한 곳으로 사람들이 옮겨와 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월기리 삼기 마을과 이사리 일대에서는 돌도끼, 어망추, 석촉 등이 자주 발견되고, 삼기 마을 입구를 솟대배기 라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은 중요한 선사유적지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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