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세종시 연동면 예양리
[지명유래] 세종시 연동면 예양리
  • 이지웅 기자
  • 승인 2022.0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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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천이 흐르며 비교적 낮은 구릉 지대를 이루고, 넓은 경지가 전개되어 농사에 알맞다.
조선 말엽엔 연기군 동이면(東二面)의 지역이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이었던 박천붕(朴天鵬)과 그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어 예(禮)를 기르고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라 하였다 한다. 서기 1914년에 행정구역 개혁 때 인근의 마을과 청원군(淸原郡)의 일부(一部)를 병합하여 예양리라 하고 연기군 동면(東面)에 편입(編入)하였다.

산속골 ‘양골’ 북쪽 산속에 있는 마을이다. 아늑한 곳에 자리한 마을로 예전엔 출세를 등진 사람들이 많이 은거했던 마을이다. 마을 뒤편에 해평 윤씨의 오래된 산소가 있어 일명 산소골, 산소동이라 부른다.

양골(養谷) 예양리의 중심 마을이다. 덕(德)을 기르고 배우는 곳이라 하여 ‘양곡(養谷)’ ‘인동(仁洞)’ ‘양골’ ‘예양’이라고도 부른다. 하루 종일 볕이 든다 하여 양동(陽洞)이라 했는데 변하여 양인동(養仁洞)이라고도 했다. 선조(宣祖) 때의 충신 박천붕(朴天鵬)과 그 아들들의 거룩한 가(家)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미꾸지 충신문(忠臣門)이 있어 ‘정문(正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어진 이, 글 많은 이를 길러냈다 한다. ‘양인(養仁)’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엔 주로 밀양박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아미산의 끝자락이란 뜻에서 미꾸지라 불렀다.

진도(津渡) 미호진 재 예양리전(美湖津 在 禮養里前) 이것이 미꾸지 나루로서 예양리의 미꾸지 앞에서 미호천을 건너 조치원으로 가던 나루이다.

강촌(江村) ‘미꾸리내‘ 옆에 있는 마을이다. 8.15 해방과 더불어 생긴 마을로 만주에 이주 갔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이룩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동진평야(東津平野)를 끼고 뒤에는 미호천(美湖川) 금강(錦江) 줄기가 흐르고 있어 강(江) 옆에 위치한 부락이라 하여 강촌(江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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