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광천읍 가정마을(3)-1
[홍성군 마을 이야기] 광천읍 가정마을(3)-1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09.0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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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가을 추위가 이어지다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날. 광천읍 가정마을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는 최용섭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직 걸을 수 있는데 집에 앉아만 있을 순 없지' 그가 매일 집을 나서 왼손은 뒷짐을, 오른손은 지팡이를 짚고 유유자적 마을을 활보하는 이유이다. 걸음은 청년과도 같아 보였지만 지팡이를 짚은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가정마을에서 보낸 세월은 얼마일까?
  “나? 평생 살었지. 고조할머니 때부터 여기서 살었어.
  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저 집에서 살었지.”
  평생. 올해로 88세인 그는 군 생활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모두 이곳 가정마을에서 보냈다. 행복했지만 매 순간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모진 세월에 친구와 동료, 이웃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는 고독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 오늘에 이른 이야기가 궁금해 여쭈었더니 껄껄 웃으며 다 지난 옛날 얘기는 뭣허러 하냐고 답한다. 다 지난 옛날이야기, 그것은 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가정마을 옛이야기 ① - 둠벙
  “용군이가 이사 갈 적에 거기 툼벙 파고 순집이가 사진 찍고 그랬지. 보조받으려면 사진을 찍어야 된대. 그때 여기에 사진기가 있었간? 파주에서 사진기라고 개갈 안 나는 거 빌려다가 찍어 보내서 보조받았지. 논에 물이 없으니까 논에 물 대려고 팠어. 이 동네는 냇갈이 없어서 물이 들어오는 데가 없어. 논이 마르면 물을 대야 하는데 없으니께 물이 날 때 지적지적해서 크게 툼벙을 파. 거기에 물 저장해서 농사도 짓고 물 품어 쓰고 그랬었지.
  그게 한 50~60년 됐겠네. 지금은 다 없어졌어.”
  가정마을은 두 개의 산줄기 사이 고랑에 자리 잡았다. 마을 가운데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30년 전만 해도 그 자리엔 산이 있었다. 천이 마을을 지나지 않고 비켜간 탓에 물이 귀했다. 큰말, 양지말, 진두리에 우물이 하나씩 있었지만 식수로 이용하기에도 부족했다. 물이 없어 모를 낼 시기를 놓치기 부지기수, 어찌어찌 모를 내도 논에 물이 없어 호미로 벼를 심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가 올 때마다 물을 가둘 수 있는 둠벙은 단비같이 귀한 존재였다. 논마다 둠벙이 있었지만 보조받아 판 둠벙만큼 크고 깊지 않았다. 큰 둠벙 덕에 물 걱정을 조금 덜었다.
  가정마을 옛이야기 ② - 목빈고개
  “옛날에 마을 가운데 논이 다 산이었잖아.
안에 고개가 하나 있는데, 산에 고개를 파서 사람이 넘어 다니게끔 맹들었더라고. 이짝에서 저 건너로 가려면 산을 넘어 대니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멀리 돌아가야 하니께 가깝게 가려고 산을 잘랐어. 길을 낸 거지. 거기를 목빈고개라고 혀. 목빈고개. 산을 잘라서래미 목 자른 것 마냥 해놨거든? 그 고개를 파는디 불그스름한 물이 나왔다고 그러대. 사람들이 그걸 보고 산의 목을 베서 피가 나온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 거지.”

경지 정리로 목빈고개가 있던 산이 사라지고 논이 되었다
경지 정리로 목빈고개가 있던 산이 사라지고 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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