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마을 이야기] 은하면 장촌마을-마을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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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충남
  • 승인 2021.11.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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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기억하다(2)
유방문에 걸려있는 소목사리
유방문에 걸려있는 소목사리

집 안으로 들어가면 창호지를 바른 세 개의 방문과 쪽마루가 있고, 각 방과 방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어 각 방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마당에서 본채에 오르기 위해 기단을 오르면 조그마한 쪽마루가 있다. 마당과 연결된 마루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하나는 앉아서 사용하는 용도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잠시 쉬기도 한다. 또 동네 사람들의 마실 장소가 되기도 한다. 추운 겨울에는 방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쪽마루에 걸터앉아 햇빛과 바람을 친구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가는 곳이 마루다. 

“옛날에 동동구루무를 팔고 다니는 백물장사가 있었어. 백 가지 물건을 들고 다닌다 해서 백물장사야. 구루무는 지금 로션 같은 거고 분덩어리가 있어. 하얀 덩어리를 물에 개어서 얼굴에 바르면 하얀허니 그랬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선크림이지.”

동동구루무 장수가 오면 쪽마루에 걸터앉아 행상을 풀어내고 동네 아낙들이 모여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겨우내 튼 얼굴에 동동구루무를 서로 발라주며 웃음꽃을 피웠던 곳도 쪽마루다. 다른 하나는 서서 생활하는 용도다. 쪽마루 위쪽 시렁(물건을 얹어 놓기 위해 두 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에는 살림에 필요한 소쿠리나 상 같은 것들을 올려놓는다. 또한 마루는 방과 통하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즉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공간이면서 바깥과 안을 분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루는 대청마루와 쪽마루, 툇마루, 누마루로 나눈다. 쪽마루는 대개 기둥이 없이 세워지는 마루로 마당에서 방으로 들어서기 위해 방문 앞에 걸쳐진 마루를 말한다. 대청마루는 큰 제사를 지내거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툇마루는 좁게 달아 낸 마루고, 누마루는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다. 

유영례 씨 집 방문 위에는 소목사리가 지금도 걸려 있다. 

“우리 영감이 만든 것인데 소 목에 거는 물건이여. 아주 연한 나뭇가지로 만든 것이지. 여기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아무 병 없이 살라고 거는 거야.” 

집에서 가장 중요한 화장실을 예전에는 변소라 불렀다. 옛말에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棄灰者 杖三十, 棄糞者 杖五十)'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재를 버리는 사람은 곤장이 삼십대요, 똥을 버리는 사람은 곤장 오십대를 친다'는 말이다. 그만큼 재와 사람의 배설물은 농사를 짓는데 긴요하게 쓰였다. 또한 변소에는 변소 각시가 있다. 지방에 따라 측신, 칙간조신, 부출각시, 칙시각시, 칙도부인이라고 불렀다. 변소각시는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것을 자기 발에 걸어놓고 세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뒷간에 올 때 자기를 놀라게 하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집어 씌웠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이 병이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변소에 가기 대여섯 발자국 전에 헛기침을 하고 들어갔다. 옛날 변소에는 특별한 가리개 시설이 없었다. 그저 거적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놓고 사용했다. 그러다 가릴 수 있는 닫혀진 벽면이 생기면서 그곳에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낙서가 써 있었다. 그 낙서는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와 사랑한대요~’라거나 약간의 음담패설이 적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누구누구의 대상이 되었던 이는 부끄러운 마음에 열심히 지워보려고도 하지만 잘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친구들의 놀림으로 얼굴이 빨개지며 다녔던 기억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그림의 기원이 낙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알타미라 벽화가 낙서에서 시작했다고 하면 낙서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변소에 앉아 볼 일을 보면서 낙서를 했을까? 변소(便所)는 일본말이 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문을 풀어보면 편안해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몸 안에 쌓인 배설물을 내보내면서 몸이 편안해지고, 더불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하는 뜻이리라.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서 비어있는 벽면에 무언가 그리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절에서는 변소를 해우소(解遇所), 근심을 푸는 장소라고도했다. 현재 유영례 씨 집은 화장실을 개조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어 변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유영례 씨 집에는 구들을 놓아 취사와 난방을 해결했던 집이다. 자식들이 외지로 나가고 남편을 여읜 후 자식들이 구들을 뜯어내고 가스를 놓아 혼자 사는 어머니의 일상생활이 편리하도록 리모델링을 해줬다. 다만 아래채에 있는 구들과 아궁이는 뜯지 않았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서양의 경우는 난방과 밥을 하는 불이 따로 있는 구조다. 그러나 우리 구들은 난방과 취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구조다. 밥을 하면서도 난방을 하고, 난방을 하면서도 밥을 할 수 있는 드문 경우다. 밥을 하면서 따뜻해진 방 아랫목에는 한가운데가 불룩해진 이불이 있다. 그 안에는 미처 끼니를 맞춰 집에 들어오지 못한 식구를 위한 밥 한 공기가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면 메주를 띄워 이불을 덮어두기도 한다. 식혜를 만들 때도 아랫목은 내 차지가 되기 힘들다. 밥알이 동동 떠 제대로 된 식혜가 될 때까지 아랫목에게 양보해야 한다. 

불에 제대로 달궈진 구들장 덕에 거무스름하게 타버린 아랫목은 그저 따뜻하기만 한 곳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배려와 한겨울 한 이불 밑에 온 가족이 모여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군고구마를 까먹던 따뜻한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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