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22년 선택,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란 국가리더십
[기획] 2022년 선택,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란 국가리더십
  • 석용현 기자
  • 승인 2022.01.17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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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 신뢰국제사회 국가지도자의 핵심조건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정의를 선택
정의, 미래한국 선진문화사회 실현 핵심요인

[투데이충남 석용현 논설위원] 전세계 석학들이 주목하고, 한국의 국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란 마이클 샌델의 책이 나올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 민주화나 윤리적 갈등 등 대한민국의 상황에 들어맞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불티나게 팔렸고, 세대를 넘어, 진영을 넘어, 이념의 중심, 도덕성의 회복을 위한,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다시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2022년, 현 시점에서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를 진단해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우리 한국사회는 혼돈의 카오스적 현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할 운명에 놓여있으며, 이를 위한 국민들의 위대한 선택의 순간은 한국의 역사를 혁신하고 바꾸어 놓을 정직한 신념의 사람이 필요하다.

이제 선진국의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 공정하고 올바른 사회제도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정치 철학적인 관점에서 대답한 책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다시 솔루션이다. 

이 책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으로 이론을 묶어놓은 뒤 여러 가지 윤리적 갈등 사례를 보여준 뒤, 이론에 맞춰서 하나하나씩 설명, 유명한 베이비 M 사례부터 철도 기관사 등 철학이나 윤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론을 설명해 나간다는 특징을 보여준다는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북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강조. 문제점으로 소수의 피해를 합당화 할 수 있으며, 도덕을 기계적으로 계산할 오류가 있다는 이론이다. 영국의 도덕 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제러미 벤담은 공리주의라는 철학적 원칙을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 정의는 사회 구성원 중 다수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 행복, 인권과 다수의 생명, 행복, 인권 중에서 더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다수의 삶, 인권, 행복이 가치있다고 한다. 공리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수치화하거나 계량화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영역들까지 전부 계산 가능한 사항들로 만들어 버리는데, 마이클 샌델은 공리주의의 이런 점을 비판한다.

마이클 샌델은 무엇이 더 이득인지를 따지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고, 이익과 인권, 이익과 윤리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행복을 이득이라는 것으로 일원화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며, 공리주의는 결국 소수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둘째 자유주의다. 이 자유주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특징을 가지며, 문제점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도덕적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개인 선택의 자유만을 강조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부는 거의 모든 정치적 쟁점에 대해 중립을 지킨 채 무기력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자유주의는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인권을 강조하며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한 것은 옳은 거이라고 주장하는데, 국가의 개입은 반대하고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선택이 정의라고 믿는다. 이 자유주의의 문제점은 개인의 자유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은 안락사, 낙태, 장기 거래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동의한 놀이동산의 패스트 트랙, 헌혈을 하면 상품권을 주는 것,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 중 예치금이 큰 경우 우선순위에 두는 것, 명예소방관, 명예경찰관이 되기 위해 기부금을 받는 것도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것들(패스트 트랙과 예치금 등)이 시장 만능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윤 추구가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고 사회 구성원들은 돈이 되는 일만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끼리 합의한 것이 무조건 정의로운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에 위화감과 차별감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셋째 자유주의(존 롤스)다. 이 자유주의는 평등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있다. 먼저 평등적 자유주의는 기회의 평등(무지의 베일)에 따른 능력주의와 부의 재분배. 능력주의를 인정하되 능력주의를 해치지 않는 내에서 부의 재분배를 긍정한다는 이론이다(차등의 원칙). 따라서 정부는 가치 판단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립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에, 자유를 외치며 극단주의적 행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막을 수 없게 되며, 또한 능력주의 역시 계층세습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로버트 로직; 자유지상주의)다. 이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본의 사용 역시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가져야 된다고 주장한다. 세금은 국가가 노동한 시간을 빼앗는 것이기에, 곧 자유와 인권의 침해가 되므로 개인의 자본 사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세금은 최소화해야(=최소국가) 하며,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시장의 소비도 감소하게 되어 자본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세금을 거둬 부의 재분배를 해야하는 모순에 빠진다.

넷째 공동체주의(매킨타이어)다. 공동체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정치철학으로 목적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목적을 따르는 공동체 주의에서 정의로운 사회는 개개인의 헌신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만들어진다. 샌델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유주의는 도덕의 가치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 때문에, 공동체의 전통 도덕은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해체되어버려 무너져 버린다는 문제의식에서 매킨타이어는 공동체의 전통과 습관에서 비롯된 도덕적 가치들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인은 공동체의 전통에서 비롯된 도덕을 배움으로 해서 도덕적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도덕적 인간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므로 자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한다. 다만 이런 도덕적 가치의 의무는 정치적으로 제도화되어선 안되며, 즉 권유나 방향 제시에서 그쳐야 되며 인간 존재를 위해 좋은 선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도덕이 제도로 강제되거나 또는 인간 존재를 위한 좋은 선이 아니라면, 전체주의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서 매킨타이어는, 어떤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는 그 가치의 도덕적 실천을 통해 그 본질(목적: telos)이 파악되며, 그 도덕적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만족감(행복)이 인간 존재를 위해 좋은 선인 한에서 우리사회가 권장하는 도덕이 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행복론을 차용한다.

샌델은 도덕적 가치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그 가치의 본질(목적: telos)들을 비교함으로써 우리 공동체는 어떤 가치를 인정할 것인가(명예)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자고 주장한다. 즉, 여러 가치들 중 우리사회에 더 합당하고 중요한 도덕적 가치들을 판단해 우리의 도덕(공동선)으로 만들자는 정치적 적극성을 띠고 있다. 권리에는 자연적 의무(생명, 자유), 자발적 의무(합의), 사회적 연대 의무(충성)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의 정당성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권리가 기여하는 목적(telos)의 도덕적 중요성에 의존한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샌델은 앞의 4가지 관점 ㅡ 공리주의적 관점, 평등적 자유주의적 관점(존 롤스), 자유지상주의적 관점(로버트 노직), 공동체주의적 관점(매킨타이어) ㅡ 의 반성적 평형을 통해, 각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은 어떤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 줄 것인가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공공선(도덕)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좋은 사회를 위해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민 의식을 만들어 내며, 그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기준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설정한 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 공리주의적 접근, 중립적인 정의의 원칙으로서 선험적 자유와 합의를 주장한 자유주의적 접근, 즉 자신의 합리적 이성을 통해 스스로에게 자신이 정한 도덕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보편적 도덕법칙을 이끌어낸 칸트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빈자(최소수혜자)에게 이를 줌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맞춰야 한다는 롤스의 이론을 소개한다. 또한 동의와 상호이익으로 이루어진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존 로크의 주장과 부자는 세금으로 빼앗긴 만큼의 강제노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부는 최소한의 치안유지만 하면 된다는 노직의 이론을 설명한다. 이후 정의란 미덕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소개하며,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에 따른 공동체주의를 말하면서 자연적 의무, 자발적(합의적) 의무와 구별되는 연대 의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중립적 원칙과 합의의 영역을 넘어서는 도덕적 의무(곧 연대 의무)가 있음을 들어, 존 롤스를 비판한 대목은 핵심부분이다.

이후 결론부에 이르러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에 기반한 목적(본질) 파악과 영예 분배 결정을 다루면서,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고, 마지막에는 정의 담론이 도덕의 영역을 애써 피하고 중립을 지키려다 보면 오히려 근본주의의 득세를 돕는 꼴이 되며, 정의에 대한 담론을 다룰 때는 도덕을 논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한 도덕적 담론 활성화와 도덕적 정치 담론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선명해지는 사회적 연대 의식 강화를 강조한다.

이렇게 사회의 연대 의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만, 샌델에게 연대의무란 자연적 의무(생명, 자유), 자발적 의무(합의에 의한 의무)와 함께 3가지 의무 중 하나이면서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3가지 관점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이클 샌델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공동체로 쉽게 오해받기 때문에, 샌델은 여러 관점을 파악하여 가장 적절한 관점을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함께 찾아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공동체주의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한 왈쩌식의 다양한 기준으로 가치 분배를 구분하는 것(복합평등론)을 비판한다. 샌델은 상반된 가치의 충돌은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반성적 평형을 통해 도덕적으로 더 좋은 관점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왈쩌식의 상대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에서도 다소 벗어나 있다고 본다. 매킨타이어와도 다르다고 말하는데, 매킨타이어는 공동체의 전통이 개인의 정체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하지만, 샌델은 거꾸로 동료 시민들과 함께 고민한 결정이 공동체 속d서 개인의 좋은 삶을 만들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살펴볼 때 샌델의 관점은, 공동체 속의 개인은 개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함께 공동체의 가치를 결정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선택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린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개념들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공화주의라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공화적 시민 참여가 일어나는 조건이, 공동체의 연대 의식과는 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공동체주의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최근 쉴새없이 쏟아지는 이슈와 언어적 유희속에 국민들의 선택, 그 중요성은 지속가능한 한국의 발전과 국민의 안전, 행복한 세상, 경제적 풍요를 위해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샌델의 이론적 논거와 사례를 통해서 보듯, 사회적 도덕성과 정의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 좋은 사회를 위해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민 의식을 만들어 내며, 그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샌델은 여러 이론적 관점을 파악하여 가장 적절한 관점을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함께 찾아내고자 하는데, 다가오는 2022년의 선택은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적극 필요하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손, 이 선택의 손은 미래 한국의 운명을 다시 설계하는 국가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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