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의 터널 27곳 가운데 12곳에서 재난방송이 송출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충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드러났다. 주진하 의원의 지적은 단순한 시설 고장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반복적으로 드러나고도 개선되지 않아온 구조적 행정 태만이자, 도민 생명 안전을 다루는 국가 기본 의무를 도가 소홀히 해왔다는 명백한 경고다.
터널 사고는 시간 싸움이다. 밀폐된 공간, 짧은 시야, 제한된 대피 통로 속에서 화재나 다중 추돌이 발생하면 3분이 생사를 가른다. 그 3분을 벌어주는 장치가 바로 재난방송이다. 시각적 안내가 차단된 터널에서 대피 방향을 알려주고, 연기 확산 상황이나 차량 정체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런데 충남도는 절반 가까운 터널을 ‘침묵 상태’로 방치해왔다. 주 의원이 “무용지물”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안이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도정 감사 때마다, 감사원 지적 때마다 유사한 문제가 반복돼 왔다. 장비 고장, 점검 누락, 예산 미반영, 책임 공백. 결국 어느 지점에서도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추진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재난방송 설비는 의무 설치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동 불능 상태로 장기간 방치됐다면 이는 ‘실수’가 아니라 명백히 안전 행정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주진하 의원이 “안전관리 기본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은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다. 도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시설에서 행정이 이렇게 느슨해도 되는가. 터널 내 재난 상황은 단 몇 초의 대응 실패가 수십 명의 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충남도는 지금까지 ‘문제가 있을 때만’ 점검하고, ‘지적이 나오면’ 뒤늦게 움직여왔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한 충남의 안전 공백은 결코 메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다. 왜 터널 재난방송 문제는 매년 지적되는데 매년 그대로인가. 예산 부족인가, 시스템 부재인가, 책임 미루기인가. 어느 이유든 받아들일 수 없다. 도민의 생명 보호는 어떤 정책보다 우선하며, 어떤 예산보다 먼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 의원이 촉구한 것처럼, 충남도는 즉각적으로 전수 실태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장비 불량, 수신 불능 구간, 노후 설비, 유지보수 체계, 관리 책임 구조까지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개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조직적 허점을 점검해 향후 재발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장비 몇 개 고치는 차원의 대응으로는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충남은 앞으로 대규모 도로망 확충, 장거리 터널 개통, 관광·물류 증가 등 다양한 교통 환경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충남도는 도민 앞에 어떤 명분으로 사과할 것인가. ‘몰랐다’도, ‘예산이 없었다’도, ‘담당자가 바뀌었다’도 책임이 될 수 없다.
이번 주진하 의원의 지적은 충남 안전 행정이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이제 충남도는 더 이상 변명하거나 미루어서는 안 된다. 안전은 성과를 내기 위한 행정이 아니라 존재 이유를 묻는 기본이다. 충남도는 도민에게 묻는다. “우리는 당신의 생명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답을 행동으로 증명할 때다.
